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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뱀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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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 작성일16-08-16 22:25 조회5,5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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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여성들

오히려 무고로 고소당해

2013년 친고죄 폐지 후

검찰의 무고 인지 증가

피해자 특성 등 반영한

사법기관 수사 지침 필요

95963_2016072118452023G_99_2016072208400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피해 다음날 가해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거나,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유흥업소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답지 못하’거나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꽃뱀’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 일러스트 이재원

두 달 새 남성 연예인 5명에 대한 성폭력 범죄 고소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가 무고로 피해 여성을 맞고소하면서 성폭력상담기관에는 고소 전부터 무고죄를 걱정하며 ‘꽃뱀’으로 의심받을까 두려움에 떠는 피해 여성들의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2013년 친고죄 폐지 이후 일부 지방검찰청이 성폭력 고소에 대한 무고 단속을 집중 홍보하면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더욱 침묵하도록 만들고 있다.

“무고는 정말 큰 죄입니다.” 지난 17일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배우 이진욱(35)씨가 경찰 조사에 출석하면서 한 말이다. 이씨는 이날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 앞에서 옅은 미소를 보이며 무죄를 주장했다. 사건은 지난 12일 발생했다. 이날 지인 소개로 이씨와 만난 피해 여성 A씨는 저녁식사 후 헤어진 뒤 이씨가 밤늦게 집으로 찾아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 A씨 측은 17일 해바라기센터를 찾아 성폭행 검사를 받고, 사건 당시 착용한 속옷과 몸에 멍이 든 사진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씨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증거로 제출하며, A씨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은 “이진욱에게 진정한 사과를 원했지만 오히려 A씨를 꽃뱀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다시 무고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4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박유천(30)씨도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하자 상대 여성 2명을 무고로 맞고소했다. 이들의 맞고소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피해자들은 피해 다음날 문자메시지를 보냈거나,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유흥업소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답지 못하’거나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꽃뱀’으로 의심받는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졸지에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피의자’ 신분으로 강등된 것이다.

최근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신고율이 증가하자, 무고로 맞고소하는 사례도 함께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고가 성폭력 피의자들에게 하나의 매뉴얼처럼 작동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유명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남성 연예인이 피해 여성들을 무고로 고소한 것은 피해 여성들에게는 어떠한 피해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특히 호감이 있었다, 늦은 밤에 찾아갔는데 문을 열어줬다,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말로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하기 때문에 성폭행은 없었다는 식으로 무마하는 일은 있었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성폭력 사건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무고죄의 증거로 작동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는 것은 아직까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실제로 성범죄는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아서 수사기관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대표적인 암수범죄다. 암수범죄율이 87.5%에 달해 실제 발생하는 성범죄는 통계 수치보다 최대 6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신고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최근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로 맞고소하는 사례가 연이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신고를 주저하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상담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최희진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력 피해자 상당수는 고소에 앞서 증거 불충분 등으로 수사기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거나, 무고로 역고소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며 “최근 연예인 성범죄 고소 사건이 알려지면서 무고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묻는 여성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 소장은 “특히 최근 성폭력 피해로 고소한 사안을 수사단계에서 검찰이 무고로 인지하는 사례가 많다. 지방검찰청 몇 곳에서는 보도자료를 내고 성폭력 고소 등에 대한 무고 단속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며 “성폭력 범죄와 피해자에 대한 사법기관의 이러한 태도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고, 여성의 사법접근을 막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4년부터 의정부지방검찰청, 전주지방검찰청, 대구지방검찰청,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등이 성폭력을 포함한 무고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였다.

죄 없는 사람이 허위 고소에 의해 피해를 입으면 안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와 피해자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일반적인 무고사건과 성폭력 피해로 고소한 사안을 무고로 인지하는 것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2월 B씨는 지인에게 강제추행으로 상해를 입었다고 고소했다. 하지만 검사는 가해자와 친한 주변인들의 진술 등을 증거로 피해자를 무고로 기소했다. 어렵게 성폭력 고소를 결심했지만 오히려 무고의 피의자로 입장이 바뀌어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B씨는 2014년부터 이어진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 측의 항소로 현재 대법원 공판 기일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지방검찰청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폭력 신고‧고소에 대한 무고 단속 등 언론 홍보는 피해자의 무고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증가시켜 암수율이 높은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 연구위원은 “검사는 고소사건에서 무고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성폭력 신고나 고소에 대한 무고 인지수사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법적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검찰청 차원에서 성폭력 사건처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적 평가나 비난, 가해자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합의 없이도 고소를 취소하거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성폭력 피해자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고소 취소, 진술 번복은 검사의 무고 인지의 빌미가 될 수가 있는 셈이다.

이미 유엔(UN)은 여성의 사법접근권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젠더 관점으로 성폭력 수사를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발간한 ‘여성폭력에 대한 검찰의 효과적인 대응방안 지침서’에는 성폭력 사건처리 과정에서 무고의 고의가 없는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처벌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지침서에는 ‘검사가 피해자를 직접 대면할 때에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판단을 삼가고 범죄가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라’ 등 젠더 관점에 기반한 성폭력 수사 실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처벌 강화 위주의 정책 방향은 도리어 검찰 등 수사기관을 위축시켜 성폭력 범죄와 피해자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로 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하나 기자 (lhn21@womennews.co.kr)
 

자료 : 기사입력 2016-07-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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